성경연구노트1차 자료로 확인하는 성경 배경
에게해의 작은 섬, 바위투성이 곶에서 새벽 바다를 내려다본 그림. 석회암 바위와 낮은 덤불만 있고 사람도 배도 없이 비어 있다
그림: 내용을 돕기 위한 AI 생성 삽화입니다.
요한계시록 5:5–6

사자는 한 번, 어린양은 스물여덟 번

장로는 사자가 이겼다고 말해 줘요. 그런데 요한이 고개를 돌려 본 것은 죽임당한 어린양이었어요. 왜 성격이 정반대인 두 짐승이 같은 분을 가리킬까요?

🦁 계시록에서 예수님을 사자라 부른 곳 1회 · 어린양이라 부른 곳 28회

장로가 말한 것요한이 본 것

두 절을 나란히 놓고 읽으면 어긋나는 데가 보여요.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요한계시록 5:5–6 · 개역개정

5절의 동사는 레게이 모이(λέγει μοι) — “내게 말한다”예요. 6절의 동사는 에이돈(εἶδον) — “내가 보았다”고요.

요한은 사자를 본 적이 없어요. 사자는 들은 것이고, 본 것은 어린양이에요. 이 차이가 이 장면 전체의 열쇠예요.

계시록에 같은 구조가 한 번 더 있어요

7장이에요. 요한은 먼저 십사만 사천이라는 숫자를 듣고(7:4),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명부를 받아요. 그러고 나서 눈을 들어 봅니다(7:9) —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셀 수 없는 무리가 서 있었어요.

두 곳 다 들은 것이 틀린 게 아니에요. 본 것이 들은 것의 정체를 밝혀 줘요.

계시록은 예수님을 사자라고 몇 번 부를까요?

딱 한 번이에요. 그리고 5장 5절 이후로는 다시 부르지 않아요.

사자 λέων1계시록 안에서 예수님을 가리키는 유일한 자리(5:5)
어린양 ἀρνίον28계시록의 ἀρνίον 29회 가운데 13:11(거짓 어린양)을 뺀 전부예요
짐승 θηρίον39계시록이 실제로 짜 놓은 대결은 어린양 ↔ 짐승이에요

신약 전체에서 사자(λέων)는 아홉 번 나와요. 그런데 그 아홉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를 보면 조금 놀라워요.

신약의 사자 아홉 자리 — 누구를 가리키나
본문가리키는 대상
계 5:5그리스도 — 신약 전체에서 유일
벧전 5:8마귀 —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계 13:2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입
계 4:7네 생물 중 첫째의 모습
계 9:8 · 9:17황충의 이빨 · 마병대 말의 머리
계 10:3힘센 천사의 부르짖는 소리
딤후 4:17 · 히 11:33벗어나야 할 위험

같은 낱말이 그리스도에게 한 번, 마귀에게 한 번, 짐승에게 한 번 쓰여요. 사자는 신약에서 안정된 좋은 상징이 아니에요.

구약의 사자는 위엄의 상징이었을까요?

아니었어요. 히브리어 사자 낱말 여섯 개를 다 모아 103절을 세어 봤어요.

사자를 뜻하는 히브리어는 하나가 아니에요. אַרְיֵה(아르예), כְּפִיר(크피르, 젊은 사자), לָבִיא(라비), שַׁחַל(샤할), גּוּר(구르, 새끼), לַיִשׁ(라이시) — 여섯 낱말에 모두 144회, 103절이에요. 하나만 세면 집계가 틀려요.

구약 사자 103절은 어떤 자리에 쓰였나

막대에 손을 올리면 예로 든 구절이 보여요. 가로축은 절 수예요.

구약 사자 103절의 문맥별 분포 실제 맹수와 죽음의 위험 32절, 적군과 제국과 악한 통치자 27절, 하나님이 찢으시는 그림 12절, 이스라엘과 용사의 힘 11절, 성전과 왕좌의 조각 9절, 원수와 박해자를 부르는 기도문 8절, 종말에 무해해지는 사자 4절. 긍정적인 상징으로 쓰인 자리는 백세 절 가운데 열한 절뿐이에요. 자세한 구절은 아래 표에 있어요. 0 10 20 30
위협·심판 그 밖 긍정
백세 절 가운데 긍정적인 상징은 열한 절(약 11%)뿐이에요. 위협·포식·심판 쪽이 일흔아홉 절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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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예로 든 구절
실제 맹수·죽음의 위험32왕상 13:24 · 왕하 17:25 · 삿 14:5 · 삼상 17:34 · 전 9:4
적군·제국·악한 통치자27렘 4:7(바벨론) · 나 2:12(니느웨) · 겔 19:2 · 습 3:3 · 잠 28:15
하나님이 찢으심12호 5:14 · 호 13:7–8 · 사 31:4 · 암 3:8 · 렘 49:19
이스라엘·용사의 힘11창 49:9 · 민 23:24 · 민 24:9 · 신 33:20 · 신 33:22 · 삼하 1:23 · 미 5:7
성전·왕좌 조각, 그룹의 얼굴9왕상 7:29 · 왕상 10:19 · 겔 1:10 · 겔 41:19
원수·박해자(기도문)8시 7:2 · 시 10:9 · 시 17:12 · 시 22:13·21 · 애 3:10
종말에 무해해짐4사 11:6 · 사 11:7 · 사 35:9 · 사 65:25
하나님을 사자에 비유한 열두 절도 위로가 아니에요

거의 전부 “찢는 자”예요. 호세아 5장 14절은 “내가 찢고 갈지라 건질 자 없으리라”고 하고, 13장 8절은 “그들의 염통 꺼풀을 찢고”라고 해요. 심판의 그림이지 품어 주는 그림이 아니에요.

성전과 왕좌에 새긴 사자 조각도 지키는 짐승이에요. 솔로몬의 왕좌 계단에 있던 사자 열둘이 그렇고요(열왕기상 10:19–20). 경배의 대상이 아니었어요.

그럼 구약의 어린양은 속죄의 상징이었을까요?

이쪽도 통념과 달라요. 어린양은 상징이기 전에 회계 단위였어요.

어린양도 히브리어 낱말이 여섯이에요. 다 합쳐 178회, 157절이고요. 그런데 그중 137회(77%)가 제의 문헌에 있어요 — 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에스겔 45–46장이요. 민수기 7장(봉헌 예물)과 28–29장(절기 제물) 두 곳만으로도 큰 덩어리를 차지해요.

구약 어린양178회 / 157절낱말 여섯 개를 합친 값이에요
제의 회계77%“숫양 하나, 어린양 일곱” 하는 예물 목록이에요
하나님을 가리킨 용례0어린양은 언제나 드려지는 쪽이에요

개인을 어린양에 비유한 곳은 딱 세 군데예요. 그리고 셋 다 죽으러 끌려가요.

본문내용누구
사 53:7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양,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고난받는 종
렘 11:19끌려서 죽으러 가는 순한 어린양예레미야 자신
삼하 12:3–6가난한 사람의 암양 새끼를 빼앗아 잡음나단의 비유

여기서 계시록 5장 6절의 충격이 나와요. 보좌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이 제물이에요. 구약에서 어린양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을 가리킨 적이 없었거든요.

“유월절 어린양은 속죄 제물이었다”는 어떨까요?

출애굽기 12장 전체를 검색해 봤어요. 속죄 어휘가 하나도 없어요. כפר(속죄하다) 0회, חטאת(속죄제) 0회, אשם(속건제) 0회요.

12장이 쓰는 낱말은 “넘어가다”·“건지다”·“표적”이에요. 13절이 “그 피가 …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라고 해요. 죄를 없앤다는 말이 없어요.

속죄를 뜻하는 כפר가 나오는 94절과 함께 등장하는 짐승을 세어 보면 수소 7절, 숫염소 7절, 숫양 4절이 주력이고 어린양은 한 절(레 14:21)뿐이에요. 속죄일(레위기 16장)의 제물은 수소 하나와 숫염소 둘이고, 거기에 어린양은 없어요.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눕는다”는 어디에 있을까요?

성경에 없어요. 한 번도 나오지 않아요.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이사야 11:6 · 개역개정

짝을 다시 보세요.

종말의 짐승 짝짓기 — 누가 누구와 묶이나
본문어린양의 짝사자의 짝
사 11:6이리
사 11:7 —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음
사 65:25이리 — 같은 그림이 반복돼요

어린양의 짝은 언제나 이리이고, 사자의 짝은 언제나 소예요. 70인역도 똑같아요 — 사 11:6이 뤼코스(이리)아르노스(어린양)를 묶고, 사자는 모스카리온(송아지)·타우로스(황소)나란히 놓여요.

그런데 왜 한국에서 특히 강할까요?

개역개정 이사야 11장 6절이 한 절 안에 “어린 양”과 “어린 사자”를 나란히 적어요. 앞쪽은 이리의 짝이고 뒤쪽은 송아지의 짝인데, 우리말로는 두 낱말이 한 문장 안에 붙어 있으니 눈에 한 쌍으로 들어와요.

여기에 계시록 5장의 사자와 어린양이 겹치면서 두 본문이 융합된 것으로 보여요. 영어권의 “the lion shall lie down with the lamb”도 같은 종류의 융합이고, 역시 성경 구절이 아니에요.

그러면 5절과 6절은 무슨 관계일까요?

두 상징을 나란히 놓은 게 아니라, 하나가 다른 하나를 해석해요.

열쇠는 “이겼다”는 동사예요. 5절이 에니케센(ἐνίκησεν) — “사자가 이겼다”고 말해요. 그리고 네 절 뒤에서 그 승리의 내용이 나와요.

어디무엇을 말하나
5:5“유대 지파의 사자가 이겼으니— 이미 끝난 일로 말해요
5:9“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고”
12:11성도들도 어린양의 피로 이겨요
17:14어린양이 그들을 이기리니— 이기는 쪽은 끝까지 어린양이에요

계시록은 “사자가 이겼다”를 부정하지 않아요. 승리의 정의를 바꿔요. 사자가 이겼다 — 어떻게요? 죽임당함으로요.

6절의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도 예사롭지 않아요. 에스파그메논(ἐσφαγμένον)완료형이라 “과거에 일어났고 지금도 그 상태”를 그려요. 부활한 어린양이 여전히 죽임당한 자로 서 있어요. 상처가 지워지지 않았어요.

낱말 하나가 힘의 뜻을 바꿉니다

“철장으로 다스린다”는 그 유명한 구절을, 계시록은 조금 다르게 읽어요.

시편 2편 9절은 메시아의 권세를 말하는 대표 구절이에요. 그런데 히브리어와 헬라어가 갈려요.

시편 2:9 — 같은 자음을 두 가지로 읽었어요
본문동사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תְּרֹעֵם부수다 · 깨뜨리다
70인역ποιμανεῖς목양하다 · 치다

히브리어 자음 רעם은 “부수다”로도 “양을 치다”로도 읽을 수 있어요. 마소라 학자들은 앞쪽을 골랐고, 70인역은 뒤쪽을 골랐어요. 계시록은 70인역을 따라가요.

그 동사 포이마이노(ποιμαίνω)가 계시록에 네 번 나와요.

어디본문철장
2:27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있음
12:5“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를 낳으니”있음
19:15“친히 철장으로 그들을 치겠고있음
7:17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없음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요한계시록 7:17 · 개역개정

우리말로는 “다스리다”와 “목자가 되다”로 갈라져 있지만 헬라어로는 같은 낱말이에요. 세 번은 철장을 쥐고, 네 번째는 철장을 놓고 샘으로 데려가요. 힘이 사라진 게 아니라 힘이 무엇을 하는지가 바뀌었어요.

그럼 어린양은 약한 걸까요?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 쪽이 문제예요.

5장 6절의 어린양에게는 뿔이 일곱 있어요. 계시록에서 뿔(κέρας)은 열 번 나오는데, 그중 여덟 번이 용과 짐승과 거짓 어린양의 것이에요. 나머지 둘이 금 제단(9:13)과 이 어린양이고요.

그러니 5장 6절은 “약한 자가 힘을 얻었다”가 아니라 “괴물들의 표지를 어린양이 쥐고 있다”에 가까워요.

“뿔 달린 양”은 요한이 만든 말이 아니에요

계시록과 비슷한 시기의 유대 묵시문학인 에녹1서 90장 9절에 “그 어린 양들에게 뿔이 돋는 것을 보았고 … 그중 하나에게서 큰 뿔이 돋아났다”는 대목이 있어요. 거기서 뿔 달린 양은 싸우는 지도자예요.

곧 “어린양 = 약함”이라는 전제가 오히려 본문보다 나중이에요.

계시록의 어린양이 실제로 하는 일을 모아 보면 이래요. 진노가 있고(6:16 “어린양의 진노”), 왕들의 왕이고(17:14), 성전이자 등불이고(21:22–23), 보좌에 앉아요(22:3).

“초림은 어린양, 재림은 사자”는 맞을까요?

한국 설교에서 가장 자주 듣는 설명인데, 본문과 어긋나요.

왜 두 짐승인가 — 설명 여섯 가지 판정
설명근거와 문제판정
시간 구분설
초림=어린양, 재림=사자
5:5의 사자는 이미 이겼어요. 그리고 심판 장면 전체가 어린양이에요 — 6:16 어린양의 진노, 17:14 어린양이 이기리라, 19:7 어린양의 혼인. 계시록은 사자를 미래로 미루지 않고, 아예 다시 부르지 않아요. 본문과 어긋남
양성론 구분설
사자=신성, 어린양=인성
5:5–6은 본성이 아니라 승리의 방식을 말해요. 후대 교의 틀을 거꾸로 얹은 거예요. 본문 근거 없음
들음과 봄의 교체설
들은 기대를 본 것이 재정의한다
5:5 “말한다” → 5:6 “보았다”. 7:4 “들었다” → 7:9 “보았다”의 같은 구조. 5:9이 승리의 내용을 “죽임당하심”으로 명시해요. 본문 구조가 지지
상징 어휘 활용설
둘 다 이미 있던 표현
에녹1서 90:9의 뿔 돋는 양, 에스라4서의 사자=메시아. 요한은 새 상징을 만든 게 아니라 배치를 바꿨어요. 부분 확인
음운 대구설
어린양 ↔ 짐승의 각운
ἀρνίονθηρίον이 같은 어미를 나눠 가져요. 29회 대 39회고요. 다만 저자가 의도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어요. 관찰 가능, 의도 미결
제의 배경설
어린양=속죄 제물
속죄 제도의 주력은 수소·숫염소이고 어린양은 한 절뿐이에요. 요한복음 1:29의 배경이 유월절인지 상번제인지 이사야 53장인지 합의가 없어요. 부분 반증 · 미결

정리하면 이래요. 두 짐승은 성격이 반대인 두 속성을 나눠 맡은 게 아니에요. 5절과 6절은 “이겼다”는 선언과 “어떻게 이겼나”의 대답 사이의 관계예요. 그래서 계시록에서 바뀐 것은 어린양의 힘이 아니라 힘의 정의예요.

덧붙여 — 사자는 마가복음의 상징일까요?

그 배정은 4세기 이후의 것이에요.

네 생물(계 4:7)을 네 복음서에 배정하는 전통은 처음부터 하나가 아니었어요.

누가사람사자송아지독수리
이레나이우스 180년경마태요한누가마가
아우구스티누스 400년경마가마태누가요한
히에로니무스 398년마태마가누가요한

가장 이른 증언인 이레나이우스는 사자를 요한복음에 두었고 독수리를 마가복음에 두었어요. 아우구스티누스는 또 달라서 사자를 마태복음에 두었고요. 오늘날 표준인 “마가 = 사자”는 히에로니무스 이후의 배정이에요.

곧 네 상징의 배정은 본문이 정한 게 아니라 해석 전통이 정한 것이고, 서로 다른 배정이 몇 백 년 동안 함께 있었어요.

어려운 말 풀이

아르니온 ἀρνίον
계시록이 쓰는 ‘어린양’이에요. 요한복음은 다른 낱말(ἀμνός)을 써요. 형태상 작은 것을 뜻하는 꼴이지만, 1세기에 그 어감이 얼마나 살아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아요.
테리온 θηρίον
‘짐승’이에요. 계시록에 서른아홉 번 나오고, 어린양과 끝까지 맞서는 쪽이에요.
포이마이노 ποιμαίνω
‘양을 치다, 목자 노릇 하다’예요. 우리말 성경은 문맥에 따라 ‘다스리다’로도 ‘목자가 되다’로도 옮겨요.
70인역 七十人譯
구약을 헬라어로 옮긴 오래된 번역이에요. 신약 저자들이 구약을 인용할 때 주로 참고한 본문이에요.
마소라 본문
오늘날 히브리어 구약의 표준 본문이에요. 자음만 있던 본문에 중세 학자들이 모음 기호를 붙여 읽는 법을 고정했어요.
완료형
헬라어 시제 가운데 하나. ‘과거에 일어나서 지금도 그 상태’를 그려요. 5장 6절의 ‘죽임을 당한’이 이 시제예요.
묵시문학 默示文學
환상과 상징으로 마지막 때를 그리는 글의 갈래예요. 계시록 말고도 에녹1서, 에스라4서 같은 유대 문헌이 여기 들어가요.
에스라4서
1세기 말 유대 묵시문학이에요. 독수리(로마)를 꾸짖는 사자가 나오고, 그 사자를 “기름 부음 받은 이”로 해석해요.

근거 자료

낱말 횟수는 SBL 헬라어 신약(SBLGNT)과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슈투트가르텐시아 계열 히브리어 본문(WLC)의 형태소 자료를 직접 집계한 값입니다. 판본이 다르면 한두 번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집계에서 가장 주의한 대목은 낱말이 몇 개인가입니다. 히브리어 사자는 여섯 낱말, 어린양도 여섯 낱말이고, 헬라어 어린양은 세 낱말입니다. 하나만 세면 집계가 크게 어긋납니다.

사본 문제를 하나 밝혀 둡니다. 계시록 5장 6절은 어린양(중성 명사)을 남성형 분사로 받는 파격이 있습니다. 비잔틴 계열 사본은 이를 모두 중성으로 다듬었습니다. 어려운 독법이 원본에 가깝다는 원칙에서는 비평 본문 쪽이 유력하지만, 이 파격을 신학적 의도로 읽는 것은 추론이며 확정할 수 없습니다.

연대에도 주의가 필요합니다. 창세기 49:9를 메시아 본문으로 읽는 타르굼 옹켈로스와 창세기 랍바는 3~5세기 이후 편집물입니다. 1세기 통념을 그대로 증언한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1세기 증거로 확실한 것은 에스라4서뿐입니다.

확인하지 못한 것도 적어 둡니다. 에스라4서 12장 32절의 “다윗의 후손” 구절은 라틴어·시리아어 사본 전승에 차이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원문 대조를 하지 못했습니다. 후기 고대 회당의 사자 모자이크가 ‘유다 지파’를 뜻하도록 의도됐는지도 미결로 둡니다.

  • SBLGNT / MorphGNT 형태소 자료 — λέων · ἀρνίον · ἀμνός · θηρίον · κέρας · σφάζω · νικάω · ποιμαίνω 전수 집계
  • OpenScriptures morphhb (WLC) — 히브리어 사자 여섯 낱말·어린양 여섯 낱말 전수 집계, 출애굽기 12장 속죄 어휘 검색
  • 비잔틴 다수 본문 RP2018 — 계시록 5:5–6 이문 대조
  • 70인역(Swete) — 시편 2:9, 이사야 11:6–7, 이사야 53:7, 예레미야 11:19
  • 에녹1서 90장 · 에스라4서 11–12장 (외경·위경 영역본)
  • 빅토리누스(페타우) 『요한계시록 주석』 — 라틴어권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계시록 주석(260년경)
  • 이레나이우스 『이단 반박』 3.11.8 · 히에로니무스 『마태복음 주석』 서문 — 네 생물 배정 비교
  • D. E. Harris, “The Slaughtered Lamb Shepherds with a Rod of Iron: The Use of Psalm 2:9 in Revelation”, The Journal of Inductive Biblical Studies 8/2 (2023) — 시편 2:9의 70인역 동사가 계시록을 관통한다는 논의
  • N. J. Frederick, “The Paradoxical Lamb and the Christology of John’s Apocalypse” (Brigham Young University) — ἀρνίον의 지소형 어감이 1세기에 신학적 무게를 지녔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
  • R. Bauckham, The Theology of the Book of Revelation (Cambridge, 1993) — 어린양 28회를 7×4로 읽는 논의(2차 인용)
  •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장절 표기와 짧은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