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는 “믿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천사의 말을 받아들인 그 자리에서 마리아가 고른 말은 “이루어지이다”였어요. 누가복음 어디에도 “내가 믿습니다”라고 말한 사람은 없어요.
마리아는 네 번 고백했을까요?
두 번이에요. 나머지 두 번은 마리아의 말이 아니에요.
마리아의 고백으로 함께 묶여 다니는 구절이 넷 있어요. 누가복음 1장 38절, 1장 46~48절, 2장 19절, 2장 51절이에요. 그런데 원문을 열어 보면 뒤의 둘은 누가가 마리아를 가리켜 쓴 문장이에요. 마리아가 입으로 한 말이 아니에요.
| 본문 | 첫머리 원문 · 사역 | 화자 |
|---|---|---|
| 눅 1:38 | εἶπεν δὲ Μαριάμ그런데 마리아가 말하였다 | 마리아직접 한 말이에요. |
| 눅 1:46 | καὶ εἶπεν Μαριάμ그리고 마리아가 말하였다 | 마리아찬가 전체의 도입이에요. |
| 눅 2:19 | ἡ δὲ Μαρία… συνετήρει그런데 마리아는 … 간직하고 있었다 | 누가3인칭 서술이에요. |
| 눅 2:51 | ἡ μήτηρ αὐτοῦ διετήρει그의 어머니는 … 간직하고 있었다 | 누가“그의 어머니는”으로 시작해요. |
구분을 해 두는 편이 좋아요. 앞의 둘은 “마리아가 왜 이렇게 말했나”를 묻는 자리이고, 뒤의 둘은 “누가가 마리아를 왜 이렇게 그렸나”를 묻는 자리예요. 물음이 다르니 답도 다르게 나와요.
“이루어지이다”는 어떤 모양의 말일까요?
명령도 아니고 예측도 아니에요. 헬라어에 따로 있는 희구법이라는 모양이에요.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누가복음 1:38 · 개역개정
“이루어지이다”로 옮긴 말은 게노이토(γένοιτό)예요. “되다”라는 동사의 희구법 3인칭 단수예요. 여기에 “내게”라는 여격 모이(μοι)가 붙어요.
이 문장에서 주어는 마리아가 아니에요. 주어는 “그 말씀”이고, 마리아는 그 일이 일어날 자리로 들어가요. 세 가지 모양을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보여요.
| 모양 | 한국어로 | 무슨 말이 되나 |
|---|---|---|
| 명령법 | 이루어져라 | 마리아가 명령하는 말이 돼요 |
| 미래 직설법 | 이루어질 것이다 | 사실을 내다보는 말이 돼요 |
| 희구법 γένοιτο | 이루어지기를 | 일어나기를 바라며 자리를 내주는 말이에요 |
개역개정의 “이루어지이다”는 이 모양을 제대로 옮긴 편이에요. ‘-이다’로 끝나는 이 어미가 바라는 마음을 담는 우리말 기원형이거든요. 라틴어 불가타도 접속법 fiat을 썼어요.
가운데 숫자 칸이 이 페이지의 출발점이에요. 신약에서 이 낱말은 열일곱 번 나와요. 그런데 열여섯 번이 “아니다”예요. 바울은 “그럴 수 없느니라”로 열네 번을 쓰고, 누가복음 20장 16절에서는 포도원 비유를 들은 사람들이 “그렇게 되지 말지어다” 하고 물러서요. 사도행전 5장 24절은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는 간접 의문문이에요.
| 용법 | 횟수 | 어디 |
|---|---|---|
| μὴ γένοιτο — 거부 | 14 | 로마서 10 · 고린도전서 1 · 갈라디아서 3 |
| μὴ γένοιτο — 군중의 반응 | 1 | 누가복음 20:16 |
| 간접 의문 τί ἂν γένοιτο | 1 | 사도행전 5:24 |
| 부정어 없는 긍정 | 1 | 누가복음 1:38 |
신약의 모든 게노이토가 거부일 때, 마리아의 한마디만 수락이에요.
구약에서 이 낱말은 뭐였을까요?
아멘이었어요. 70인역이 히브리어 ‘아멘’을 옮길 때 쓰는 말이 게노이토예요.
여기가 이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에요. 구약을 헬라어로 옮긴 70인역을 열어 보면 아멘(אָמֵן)이 γένοιτο로 나타나요. 두 곳을 보세요.
| 본문 | 상황 | 헬라어 |
|---|---|---|
| 신명기 27:15~26 | 언약의 저주를 읽을 때마다 온 백성이 응답해요 | γένοιτο (열두 번) |
| 민수기 5:22 | 간음을 의심받은 여인이 저주 선언에 응답해요 | γένοιτο, γένοιτο |
그러니까 마리아가 한 말은 “아멘”이에요. 문장 끝에 붙이는 습관 같은 아멘이 아니라, 언약을 낭독하고 나서 백성이 하는 그 응답이에요.
그리고 히브리어에서 ‘아멘’과 ‘믿다’는 한 뿌리예요. 어근 אמן이 세 갈래로 갈라져요.
| 형태 | 뜻 | 용례 |
|---|---|---|
| נֶאֱמָן네에만 · 니팔 | 확고하다 · 신실하다 | 서다 · 버티다 |
| הֶאֱמִין헤에민 · 히필 | 믿다 |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창세기 15:6) |
| אָמֵן아멘 | 아멘 | 신명기 27장 · 민수기 5:22 |
이 셋이 한 뿌리라는 것을 이사야가 말놀이로 보여 줘요.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서지 못하리라”는 구절인데, ‘믿다’와 ‘서다’가 같은 어근이에요(이사야 7:9). תַאֲמִינוּ와 תֵאָמֵנוּ— 글자 모양이 거의 같죠.
마리아는 이미 “믿습니다”라고 말한 거예요. 히브리어의 감각으로는 ‘아멘’이 곧 ‘믿음’이니까요. 다만 명제의 형태가 아니라 응답의 형태로 말했어요.
시내산 백성과는 뭐가 달랐을까요?
둘 다 언약에 응답한 말이에요. 그런데 주어가 뒤바뀌어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응답한 대목이 구약에 또 있어요. 시내산에서 백성이 한 대답인데, 70인역 원문을 보면 마리아와 동사 모양이 정반대예요.
| 출애굽기 19:8 | 누가복음 1:38 | |
|---|---|---|
| 헬라어 | … ποιήσομεν | γένοιτό μοι … |
| 모양 | 능동 미래 직설법 1인칭 복수 | 중간태 희구법 3인칭 단수 |
| 주어 | 우리가 | 그 말씀이 |
| 뜻 | 우리가 행하리이다 | 내게 되어지기를 |
시내산의 응답은 행위의 약속이에요. 나사렛의 응답은 자리의 내어줌이에요. 둘 다 아멘의 자리에 서 있는데, 한쪽은 자기가 하겠다고 하고 다른 쪽은 여기서 되어 달라고 해요.
“주의 여종”은 흔한 말이었을까요?
여자가 자기를 낮춰 부르는 굳어진 표현은 맞아요. 그런데 마리아는 한 글자를 바꿨어요.
“여종”으로 옮긴 말은 둘레(δούλη)예요. 하녀가 아니라 노예예요. 신약 전체에 세 번밖에 안 나와요.
| 위치 | 누가 쓴 말 |
|---|---|
| 눅 1:38 | 마리아가 자기를 가리켜 |
| 눅 1:48 | 마리아가 자기를 가리켜 |
| 행 2:18 | 베드로가 요엘서를 인용한 대목이에요 |
남성형 둘로스(δοῦλος)는 백스물여섯 번 나오는데, 자기를 그렇게 부른 곳은 거의 다 편지 첫인사예요. 로마서 1장 1절의 바울, 야고보서 1장 1절, 베드로후서 1장 1절, 유다서 1절, 요한계시록 1장 1절이에요. 복음서 이야기 안에서 자기를 “종”이라 부른 첫 사람이 마리아예요.
70인역에도 같은 표현이 있어요. 한나가 서원할 때, 아비가일이 다윗 앞에 엎드릴 때 “당신의 여종”이라고 말해요. 사무엘상 25장 41절은 어구까지 똑같아요.
보소서, 당신의 여종은 내 주의 종들의 발 씻길 종이니이다 (Ἰδοὺ ἡ δούλη σου…)
사무엘상 25:41 · 70인역(스웨테 판)
여기서 한 가지가 걸려요. 70인역 용례는 전부 “당신의 여종”(δούλη σου)이에요. 눈앞에 있는 상대에게 하는 말이니까요. 그런데 마리아는 “주의 여종”(δούλη κυρίου)이라고 말해요.
마리아 앞에 서 있는 것은 천사예요. “당신의 여종”이라고 했다면 천사의 종이 되는 셈이에요. 마리아는 그 자리에서 심부름꾼을 건너뛰고 보내신 분에게 대답해요. 이 한 글자가 38절 전체의 방향을 정해요.
마리아 찬가는 한나의 노래를 인용했을까요?
아니에요. 인용한 것은 한나의 노래가 아니라 한나의 서원이에요.
마리아 찬가를 두고 “한나의 노래를 본떴다”고 흔히 말해요. 그런데 원문을 대조해 보면 축자적으로 겹치는 쪽은 노래가 아니에요.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누가복음 1:48 · 개역개정
| 대조 | 원문 | 판정 |
|---|---|---|
| 한나의 서원 삼상 1:11 | ἐπιβλέπων ἐπιβλέψῃς τὴν ταπείνωσιν τῆς δούλης σου | 세 낱말 일치 |
| 마리아의 노래 눅 1:48 | ἐπέβλεψεν ἐπὶ τὴν ταπείνωσιν τῆς δούλης αὐτοῦ | |
| 한나의 노래 첫 줄 삼상 2:1 | ἐστερεώθη ἡ καρδία μου ἐν Κυρίῳ | 어휘가 안 겹쳐요 |
| 마리아의 노래 첫 줄 눅 1:46 | Μεγαλύνει ἡ ψυχή μου τὸν κύριον |
노래끼리는 주제만 닮았어요. 낮은 자를 높이고 배부른 자를 비우신다는 대목이 서로 호응해요(삼상 2:5·2:7 ↔ 눅 1:52~53). 낱말 그대로 옮겨 온 쪽은 아이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하는 그 기도예요.
여기 나오는 타페이노시스(ταπείνωσις)도 짚어 둘게요. 이 말은 ‘겸손’이라는 덕이 아니에요. 형편이 낮다는 뜻이에요. 신약에 네 번 나오는데 네 번 모두 처지예요. 덕으로서의 겸손은 타페이노프로쉬네(ταπεινοφροσύνη)라는 다른 낱말이에요.
그러니까 48절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마리아의 믿음을 보셨다는 게 아니에요. 마리아의 낮은 처지를 보셨다는 거예요. 창세기 29장 32절에서 사랑받지 못한 레아가 “주께서 나의 낮은 처지를 보셨다”고 할 때 쓰는 그 낱말이고요.
그럼 왜 “믿습니다”가 아니었을까요?
누가복음에서 믿음은 남이 붙여 주는 이름표예요. 자기가 신고하는 항목이 아니에요.
“믿다”라는 헬라어 피스테우오(πιστεύω)는 누가복음에 아홉 번 나와요. 그 아홉 번을 다 세어 봤어요. 전부 2인칭이거나 3인칭이에요. 1인칭 “내가 믿는다”는 한 건도 없어요. “믿음”이라는 명사 πίστις 열한 번도 마찬가지예요.
마지막 숫자 칸의 다섯 곳도 들여다볼 만해요. 마가복음 9장 24절은 “내가 믿나이다” 다음에 곧바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가 붙어요. 고린도후서 4장 13절은 바울이 시편을 인용한 거고요. 성경에서 자기 입으로 자기 믿음을 말하는 일은 이만큼 드물어요.
그런데 마리아에게 ‘믿음’이라는 말이 붙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붙어요. 다른 사람 입을 통해서요.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누가복음 1:45 · 개역개정
엘리사벳이 한 말이에요. 헬라어는 헤 피스테우사사(ἡ πιστεύσασα)—“믿은 그 여자”라는 3인칭이에요. 순서를 보세요. 38절에서 마리아가 “이루어지이다” 하고, 45절에서 엘리사벳이 “믿었구나” 하고 이름을 붙여요.
스스로 말하면 공로가 돼요. 남이 알아보고 말하면 복이 돼요. 누가복음은 이 순서를 한 번도 어기지 않아요.
같은 1장 안에 견주어 볼 대목이 하나 더 있어요. 사가랴예요.
| 사가랴 1:5~20 | 마리아 1:26~38 | |
|---|---|---|
| 물음 | Κατὰ τί γνώσομαι τοῦτο;무엇으로 이를 알리요 | Πῶς ἔσται τοῦτο;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
| 천사의 대응 | 말을 못 하게 돼요 (οὐκ ἐπίστευσας) | 설명하고 표징을 먼저 줘요 |
| 응답 | 없어요 — 말을 못 하니까요 | γένοιτο |
| 제3자의 평가 | — | 엘리사벳 — “믿은 그 여자” |
“사가랴는 증거를 요구했고 마리아는 방식을 물었다”는 설명이 널리 쓰여요. 두 물음의 문법이 다른 건 맞아요. 다만 본문이 “마리아의 물음이 더 나았다”고 말하지는 않아요. 이사야 7장에서는 아하스가 표징을 거절했을 때 하나님이 오히려 표징을 주시니까요. 표징을 구하는 것 자체가 불신이라는 도식은 성립하지 않아요.
2장의 두 절은 어떤 자세일까요?
가슴 뭉클하게 간직한 게 아니에요. 계시를 받았는데 아직 풀지 못한 사람의 자세예요.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누가복음 2:19 · 개역개정
2장 19절과 51절은 우리말로 비슷하게 읽히지만 헬라어 동사가 서로 달라요. 그리고 각각 다른 구약 본문을 가리켜요. 라틴어 불가타는 둘을 같은 낱말로 뭉갰는데, 개역개정은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와 “마음에 두니라”로 구분을 살려 뒀어요.
| 본문 | 동사 | 겹치는 구약 본문 |
|---|---|---|
| 눅 2:19 | συνετήρει신약에 세 번뿐이에요 | 다니엘 7:28 (테오도티온 역)τὸ ῥῆμα ἐν τῇ καρδίᾳ μου συνετήρησα — 동사·목적어·처소 세 요소가 같아요 |
| 눅 2:51 | διετήρει신약에 두 번뿐이에요 | 창세기 37:11 (70인역)ὁ δὲ πατὴρ αὐτοῦ διετήρησεν τὸ ῥῆμα — 야곱이 요셉의 꿈에 한 일이에요 |
두 본문이 어떤 대목인지 보세요. 다니엘은 방금 본 환상을 알아듣지 못한 채로 마음에 간직해요. 야곱도 요셉의 꿈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채로 그 말을 붙들어요. 누가는 마리아를 그 두 사람이 서 있던 자리에 세워 둬요.
19절에 함께 붙은 쉼발루사(συμβάλλουσα)도 감상적인 낱말이 아니에요. 고전 헬라어 사전(LSJ)이 이 동사의 네 번째 뜻으로 “추론하다·짐작하다·해석하다”를 올려 둬요. 그리고 그 용례로 꿈의 해석과 신탁의 해석을 들어요. 계시를 받아 놓고 풀어 보려 애쓰는 쪽에 가까운 말이에요.
시제도 눈여겨볼 만해요. 1장 38절의 게노이토는 한 시점을 가리키는 모양이지만, 2장의 두 동사는 미완료—계속되는 상태를 가리켜요. 그 사이에 50절이 못을 박아요.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승낙이 이해보다 먼저 있었고, 이해는 열두 해가 지나도 아직 오지 않았어요.
참고로 이 두 동사는 요한복음의 테레오(τηρέω)에 접두사가 붙은 형태예요. 그 낱말을 따라간 자료가 따로 있어요 — 명령은 열여덟 번, “지키라”는 없다.
사본은 갈리지 않을까요?
이 네 구절은 거의 갈리지 않아요. 대신 1장 46절에 흥미로운 이독이 하나 있어요.
비평본문(SBLGNT)과 비잔틴 다수본문(RP)을 나란히 놓고 대조했어요. 1장 38절과 46~48절은 철자까지 똑같아요. 2장 19절은 이름 표기가 마리아/마리암으로 다르고, 2장 51절은 “이”에 해당하는 낱말의 유무가 갈리는데, 둘 다 뜻에는 영향이 없어요.
그런데 라틴어 고사본 세 권이 1장 46절을 “엘리사벳이 이르되”로 읽어요. 베르첼리·베로나·브로츠와프 사본이고, 레메시아나의 니케타스도 그 방향으로 글을 남겼어요. 하르낙은 원래 이름 없이 “그녀가 이르되”였을 것이라고 추정했어요.
채택할 수는 없어요. 헬라어 사본은 예외 없이 마리아로 읽고, 웨스트콧-호르트도 이 읽기를 기각했어요. 다만 이 이독이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를 알려 줘요. 초기 라틴 교회가 이 노래를 “아이를 못 낳던 여자가 아이를 얻고 부르는 한나 계열의 노래”로 읽었다는 거예요. 그 틀에서는 엘리사벳이 마리아보다 한나에 가깝잖아요. 앞 절에서 본 삼상 1장 11절 인용과 맞물리는 대목이에요.
정리표
다섯 개 명제로 쪼개서 하나씩 판정했어요. 반증된 것부터 보세요.
| 항목 | 근거 | 판정 |
|---|---|---|
| 누가는 마리아에게 ‘믿음’ 언어를 쓰지 않는다 | 눅 1:45 ἡ πιστεύσασα — 쓴다. 다만 3인칭, 엘리사벳의 입으로 | 반증 |
| γένοιτο 는 믿음의 언어가 아니다 | 70인역이 아멘을 이 낱말로 옮긴다(신 27장 12회 · 민 5:22). 히브리어 어근 אמן 이 아멘과 ‘믿다’를 함께 낳는다 | 반증 |
| 마리아는 이해했기 때문에 승낙했다 | 눅 2:50 “깨닫지 못하더라” · 2:19·2:51 미완료 · συμβάλλουσα 는 ‘풀어 보려 함’ | 반증 |
| 눅 1:38 은 순종이지 신앙고백이 아니다 | 아멘은 언약 선언에 대한 응답이므로 둘을 가를 수 없다. 갈리는 것은 주어다(출 19:8 대조) | 가짜 대립 |
| 눅 2:19·2:51 은 마리아의 말이 아니라 누가의 서술이다 | 원문 주어가 3인칭. 19절 ἡ δὲ Μαρία · 51절 ἡ μήτηρ αὐτοῦ | 확인 |
| 신약에서 부정어 없는 긍정 γένοιτο 는 눅 1:38 하나다 | SBLGNT 27권 희구법 전수 68회. γίνομαι 희구법 17회 중 15회가 μὴ γένοιτο, 1회는 간접의문 | 확인 |
| 누가복음에 1인칭 “내가 믿는다”가 없다 | πιστεύω 9회 · πίστις 11회 전수. 모두 2·3인칭 | 확인 |
| 눅 1:48 은 한나의 노래가 아니라 한나의 서원을 인용한다 | 삼상 1:11 과 ἐπιβλέπω·ταπείνωσις·δούλη 세 낱말 일치. 삼상 2:1 은 어휘 불일치 | 확인 |
| 눅 2:19 는 단 7:28, 2:51 은 창 37:11 을 가리킨다 | 동사·목적어·처소 일치. 벵겔과 빈센트가 창 37:11 을 이미 지적했다 | 확인 |
| 눅 1:46 의 원래 화자가 엘리사벳이다 | 라틴 고사본 3권뿐. 헬라어 사본은 전원 마리아 | 채택 불가 |
| 눅 1:46 현재형과 1:47 부정과거가 어긋난 이유 | 셈어 원자료설이 다수설이나 확정되지 않았다 | 미결 |
| 마리아 찬가의 문학적 기원 | 누가의 창작인지, 히브리·아람어 원자료의 번역인지, 유대 기독교 찬송의 차용인지 가려지지 않았다 | 미결 |
| συμβάλλω 를 “해석하다”로 읽는 강한 독법 | LSJ 용례와 단 7:28 병행이 지지하나, 신약 내 다른 5회는 “의논하다”에 가깝다 | 가설 |
마리아는 “나는 믿습니다”라는 자기 상태 보고를 하지 않고, “내게 이루어지이다”라는 응답을 했어요. 앞의 것은 자기를 관찰 대상으로 삼는 말이고, 뒤의 것은 자기를 사건이 일어날 자리로 내놓는 말이에요. 그리고 그 응답에 ‘믿음’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마리아가 아니라 엘리사벳이에요.
어려운 말 풀이
- 희구법 希求法
- 바라는 마음을 담는 동사 모양이에요. 명령도 예측도 아니에요. 신약에 예순여덟 번 나오는데 그중 스물여덟 번이 누가-행전에 있어요.
- 게노이토 γένοιτο
- “되기를”. 70인역이 히브리어 ‘아멘’을 옮길 때 쓰는 말이에요.
- 아멘 אָמֵן
- 언약의 선언을 듣고 온 백성이 함께 하는 대답이에요. ‘믿다’와 같은 어근이에요.
- 둘레 δούλη
- 여자 노예예요. 신약에 세 번 나오고, 자기를 이렇게 부른 사람은 마리아뿐이에요.
- 타페이노시스 ταπείνωσις
- 낮은 처지예요. 덕으로서의 겸손은 다른 낱말이에요.
- 여격 與格
- “누구에게”를 나타내는 격이에요. 1장 38절의 “내게”가 이 격이에요.
- 미완료 未完了
- 계속되는 상태를 가리키는 시제예요. 2장 19절과 51절이 이 시제예요.
- 70인역 七十人譯 · LXX
- 기원전 3~2세기에 구약을 헬라어로 옮긴 번역본이에요. 신약 기자들이 즐겨 인용했어요.
- 테오도티온 역
- 다니엘서에는 헬라어 본문이 둘 있어요. 그중 초기 교회가 실제로 읽은 쪽이 이 판본이에요.
- 이독 異讀
- 사본에 따라 갈리는 읽기예요. 1장 46절의 “엘리사벳”이 그 예예요.
근거 자료
낱말 집계는 통념을 옮긴 것이 아니라 헬라어 본문 파일을 직접 세어 나온 수치입니다. SBLGNT 신약 27권을 형태 분석 자료(MorphGNT)로 내려받아 표제어 단위로 집계했고, 희구법 추출은 각 낱말에 붙은 여덟 자리 분석 부호의 ‘법’ 자리를 읽어 뽑았습니다. 따라서 “예순여덟 회”와 “0회”는 셈한 값입니다.
70인역 대조는 스웨테 판 본문에서 해당 절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히브리어는 마소라 본문을 따로 열어 어근을 확인했습니다. 다니엘 7:28 은 헬라어 본문이 둘이어서 양쪽을 모두 확인했고, 누가의 동사와 일치하는 것은 테오도티온 역입니다. 다만 “그 말을 내 마음에”라는 어구는 두 판본이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사본 대조는 비잔틴 다수본문 원자료에서 네 구절을 낱말 단위로 맞춰 보았습니다. 1:46 의 라틴 이독은 사본 목록을 문헌에서 확인한 것이고 원본을 직접 열어 본 것은 아닙니다.
1:46 의 현재형과 1:47 의 부정과거가 어긋나는 이유, 찬가의 문학적 기원, 이독의 발생 경로는 결정적으로 입증된 것이 없습니다. 정리표에 미결로 남겨 두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 『누가복음 강해』는 1~11편이 누가복음 1~3장을 다루는데, 1:38 과 2:19 에 대한 주석은 현존 본문에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결락인지 애초에 다루지 않았는지는 가리지 못했습니다.
- MorphGNT · SBLGNT 신약 27권 형태 분석 본문 (표제어·희구법 전수 집계에 사용)
- 비잔틴 다수본문(RP) 누가복음 — 1:38 · 1:46~48 · 2:19 · 2:51 대조
- 스웨테 판 70인역 — 창세기 18·29·37장, 출애굽기 19장, 민수기 5장, 신명기 27장, 사무엘상 1·2·25장, 이사야 7장
- 라흐프스-한하르트 판 70인역 — 다니엘 7:28 두 판본
-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 — 신명기 27:15, 사무엘상 1:11, 창세기 37:11, 이사야 7:9
- 라틴어 불가타 — 누가복음 1:38 · 2:19 · 2:51 대조
- 리델–스콧–존스 희랍어 사전(LSJ) συμβάλλω 항목
- 근대 주석 종합 — 케임브리지 성경주석, 마이어, 벵겔 『그노몬』, 빈센트 『낱말 연구』, 매튜 풀 주석
-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인용 네 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