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노트1차 자료로 확인하는 성경 배경
언덕 꼭대기에 자리 잡은 고대 마을과 그 아래로 무너져 내린 바위 벼랑을 그린 그림. 마을에서 내려온 흙길을 따라 한 사람이 등을 보인 채 멀어져 가고 있다
그림: 내용을 돕기 위한 AI 생성 삽화입니다.
누가복음 4:16–30

예수님이 읽다 만 구절

고향 회당에서 설교가 끝나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벼랑까지 끌고 갔어요. 한 시간 전만 해도 감탄하던 사람들이에요. 그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갔을까요?

📖 누가복음 4:16–30 · 공생애의 첫 장면

처음부터 화가 나 있었을까요?

아니었어요. 22절의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 편이었어요.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누가복음 4:22 · 개역개정

“증언하고”로 옮긴 낱말은 마르튀레오(μαρτυρέω)예요. 누가복음 전체에서 여기 딱 한 번 나와요. 같은 저자가 쓴 사도행전에서는 열한 번 나오는데, 그 열한 번이 모두 “평판이 좋다”, “칭찬을 받는다”는 뜻이에요. 일곱 일꾼을 뽑을 때도(사도행전 6:3), 고넬료를 소개할 때도(사도행전 10:22) 이 낱말을 써요. 그러니 22절은 호의예요.

그런데 여섯 절 뒤에는 이렇게 바뀌어요.

16절에서 30절까지, 분위기가 뒤집히는 자리
무슨 일이분위기
18–19이사야 61장을 펴서 읽으심
21“오늘 이 글이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선언
22다 그를 증언하고 놀랍게 여김호의
23“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속담을 먼저 꺼내심요구
24“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일반론
25–26엘리야가 시돈 사렙다 과부에게사례 1
27엘리사가 수리아 사람 나아만에게사례 2
28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분이 가득함분노
29동네 밖 낭떠러지까지 끌고 감살의
“메시아라고 해서 화가 났다”는 설명은 어떨까요?

본문 순서와 맞지 않아요. 21절에서 자기를 가리켜 말씀하신 직후가 바로 호의(22절)예요. 그리고 28절은 “이것들을 듣고”라고 콕 집어 앞을 가리키는데, 그 “이것들”은 25–27절이에요. 신성모독 혐의가 명시되는 곳은 요한복음 쪽이고(요한복음 8:59, 10:33), 누가는 나사렛에서 죄목을 아예 적지 않아요.

그러면 무엇을 듣고 화가 났을까요?

25–27절의 두 예화예요. 그런데 요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쪽이 아니에요.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누가복음 4:26–27 · 개역개정

두 문장의 짜임이 똑같아요. “이스라엘에 많았으되 — 그 중 아무도 — 오직 아무개뿐”. 헬라어로도 οὐδεὶς … εἰ μὴ(우데이스 … 에이 메)로 같아요.

여기서 무게가 실린 쪽은 “이방인도 받았다”가 아니라 “이스라엘은 아무도 못 받았다”예요. 배제가 앞에 오고 예외가 뒤에 와요. 게다가 두 동사—“보내심을 받지”, “깨끗함을 얻지”—가 모두 수동태예요. 그 일을 하신 분은 하나님이에요. 그러니까 이 말은 이렇게 들려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건너뛰셨다

그것도 성경 두 곳을 근거로 들어서요. 반박하기 어렵다는 것이 분노의 조건이에요.

왜 하필 시돈과 수리아였을까요?

이방인이라서가 아니에요. 둘 다 원수예요.

사례 1 시돈 땅 사렙다

누가는 사렙타 테스 시도니아스라고 적어요. 70인역 열왕기상 17:9의 표현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거예요. 굳이 “시돈”을 남겨 둔 셈이죠.

왕상 17:9
그 시돈이 이세벨의 고향

아합이 아내로 맞은 이세벨은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이에요. 엘리야를 죽이려고 쫓던 바로 그 왕비죠. 엘리야는 자기를 죽이려는 왕비의 나라에서 밥을 얻어먹었어요.

왕상 16:31
사례 2 수리아 사람 나아만

70인역은 그를 “수리아 군대의 사령관”이라고 불러요. 이스라엘을 치던 나라의 장군이에요.

왕하 5:1
소식이 온 길 끌려온 아이의 입

아람의 약탈대가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를 사로잡아 왔고, 그 아이가 나아만의 아내를 시중들다 엘리사 이야기를 전해요. 침략으로 끌려온 아이 덕분에 그 침략군 장군이 깨끗해져요.

왕하 5:2

1세기 사람들에게 이 이름들이 어떻게 들렸는지 짐작할 단서가 하나 있어요.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가 페니키아 사람들을 두고 이렇게 써요.

페니키아인 중에서도 두로 사람이 우리에게 가장 큰 악의를 품어 왔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요세푸스 『아피온 반박』 1권 13절

두로는 시돈과 나란한 페니키아 도시예요. 다만 요세푸스는 기원후 90년대 사람이고 두로를 말한 것이지 시돈을 말한 것은 아니니, 정황 증거로만 봐요.

한 가지가 더 붙어요. 25절은 굳이 “삼 년 육 개월” 기근을 적어요. 이스라엘이 가장 굶주리던 때에 양식의 기적이 국경 밖으로 갔다는 이야기예요.

“삼 년 육 개월”은 구약과 다릅니다

70인역 열왕기상 18:1은 “제삼 년에”라고 해요. 야고보서 5:17도 누가와 같이 삼 년 육 개월로 적어요. 왜 달라졌는지는 미결이에요.

예수님은 이사야를 어디서 멈추셨을까요?

“보복의 날” 바로 앞에서요.

예수님이 회당에서 펴신 곳은 이사야 61장이에요. 그런데 그 시대에 널리 쓰이던 헬라어 구약(70인역)을 펴 놓고 대조해 보면, 누가가 옮겨 적은 인용과 원문이 네 군데달라요.

70인역 이사야 61:1–2 ↔ 누가복음 4:18–19
무엇이내용
빠짐“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61:1)가 없어요
끼어듦“눌린 자를 자유롭게”가 들어와 있는데, 이 줄은 61장이 아니라 이사야 58:6에서 온 거예요
바뀜“부르다”가 “전파하다”로
끊김61:2의 “그리고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 바로 앞에서 멈춰요

두 번째 줄이 특히 재미있어요. 왜 하필 다른 장의 그 줄을 가져왔을까요? 두 본문이 같은 낱말을 공유하기 때문이에요. 61장 1절의 “놓아줌”과 58장 6절의 “자유롭게”가 헬라어로 둘 다 아페시스(ἄφεσις)예요. 낱말 하나를 갈고리 삼아 두 본문을 이어 붙인 거예요. 랍비들이 성경을 엮을 때 쓰던 방식이에요.

그리고 네 번째가 이 장면의 뇌관이에요. 이사야 61장 2절은 원래 “은혜의 해”와 “보복의 날”이 한 문장이에요. 이스라엘이 기다린 것은 이방 압제자에게 갚아 주시는 날이었어요. 예수님은 그 절반만 읽고 두루마리를 덮어 시종에게 돌려주셨어요(20절).

그럼 이게 화를 돋운 걸까요?

직접 원인은 아니에요. 인용이 끊긴 직후가 호의(22절)였으니까요. 다만 은혜의 절반만 선포한 사람이 곧이어 그 은혜가 어디로 갔는지를 말하면, 25–27절이 훨씬 아프게 들려요. 배경이지 방아쇠는 아니에요.

낱말 하나가 두 번 나와요

“받아들여지는”이라는 뜻의 덱토스(δεκτός)예요.

이 낱말은 신약 전체에 다섯 번 나오는데, 누가복음에 나오는 두 번이 둘 다 이 단락 안에 있어요.

주의 은혜의 해 4:19 — 이사야를 읽으며 선포하신 말. “받으실 만한 해”라는 뜻이에요
그 낱말을 되돌리십니다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함 4:24 — “선지자가 고향에서 받아들여지는 자가 없느니라”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각 나라에서 받아들여짐 사도행전 10:35 —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심이 되는 줄 깨달았도다”.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 앞에서 한 말이에요

방금 들려준 축복의 낱말을 청중에게 되돌리고, 두 권 뒤에서 그 낱말이 이방인에게 가서 멈춰요.

누가는 같은 장면을 세 번 씁니다

그중 하나에서는 어느 낱말이 방아쇠였는지까지 적어 둬요.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사도행전 22:21–22 · 개역개정

예루살렘 성전 뜰의 군중은 바울의 회심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어요. 그러다 “이방인”이라는 말에서 터져요. “이 말하는 것까지 듣다가”라는 구절이 헬라어로도 그대로 아크리 투투 투 로구—“이 말까지”—예요. 누가가 지점을 못 박은 거예요.

세 번 반복되는 장면 — 어휘까지 겹칩니다
누가복음 4장 (나사렛)사도행전 13장 (비시디아 안디옥)사도행전 22장 (성전)
자리회당회당성전 뜰
발단시돈 과부 · 수리아 나아만“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반응분이 가득하여시기가 가득하여“없애 버리자”
처리동네 밖으로 쫓아냄그 지경에서 쫓아냄붙잡혀 재판으로
인용한 성경이사야 61:1–2이사야 49:6

“가득하여”로 옮긴 낱말은 핌플레미(πίμπλημι)인데, 신약 스물네 번 중 스물두 번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있어요. 누가는 이 말투를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장면에도 쓰고(누가복음 1:15, 사도행전 2:4), 분노로 가득 차는 장면에도 써요. 누가복음 4:28은 그 어두운 쪽 첫 용례예요.

그럼 30절은 무슨 뜻일까요?

“유유히 지나가셨다”고 자주 말하는데, 절반만 맞아요.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누가복음 4:30 · 개역개정

맞는 부분부터요. 밀쳐 떨어뜨리려던 시도는 실행되지 않았고, 예수님은 막히지 않고 그들 한가운데를 통과하셨어요. “가시니라”로 옮긴 동사는 미완료라서 “가시던 길을 계속 가고 계셨다”에 가까워요. 라틴어 불가타도 미완료로 옮겼어요.

조심할 부분은 “유유히”예요. 본문에 없는 말이거든요. 30절은 헬라어로 일곱 낱말인데 부사가 하나도 없어요. 태도를 묘사하는 말이 0개예요.

헬라어 30절7낱말αὐτὸς δὲ διελθὼν διὰ μέσου αὐτῶν ἐπορεύετο
태도 부사0빠르게도, 천천히도, 당당히도 적혀 있지 않아요
역본 11종0한국어·라틴어·영어 어느 역본도 태도를 넣지 않아요
역본 대조 — 30절을 어떻게 옮겼나
역본30절
개역개정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새번역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떠나가셨다
가톨릭 성경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불가타Ipse autem transiens per medium illorum, ibat (미완료)
ESVBut passing through their midst, he went away
NASBBut He passed through their midst and went on His way
NETBut he passed through the crowd and went on his way
KJVBut he passing through the midst of them went his way
NIVBut he walked right through the crowd and went on his way
NLTbut he passed right through the crowd and went on his way
CSBBut he passed right through the crowd and went on his way

영어 세 역본이 넣은 right는 “곧장 관통해”라는 방향 강조예요. “여유롭게”라는 태도아니에요.

“유유히”가 데려오는 두 가지

하나는 기적 장면이에요. “군중이 얼어붙은 사이 여유롭게 걸어 나가셨다”는 그림이 따라와요.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감정이에요. 누가는 28절에서 군중의 감정은 “분”이라고 분명히 적어요. 그런데 30절에서 예수님의 태도는 한 글자도 쓰지 않아요. 이 대비가 오히려 문장의 힘인데, 여기에 부사를 붙이면 누가가 일부러 비워 둔 자리를 우리가 채우는 셈이에요.

그러면 이건 기적이었을까요? 본문은 기적이라고 말하지 않아요. 근거가 하나 있어요.

누가는 “사라지셨다”는 낱말을 알고 있었어요

알고 있었는데, 여기서는 쓰지 않았어요.

“사라짐”을 가리키는 낱말들이 어디에 쓰였나
낱말어디에 쓰였나4:30에
아판토스 ἄφαντος
보이지 않게 되다
신약 전체에 딱 한 번 — 누가복음 24:31. 엠마오에서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없음
에크뤼베 ἐκρύβη
숨으셨다
요한복음 8:59 — 사람들이 돌을 들자 예수님이 숨으심없음
눈이 가려짐누가복음 24:16 —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없음
손에서 벗어남요한복음 10:39 —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없음

같은 저자가 스무 장 뒤에서 “보이지 않게 되셨다”를 낱말 하나로 말해요. 요한복음은 똑같이 돌을 드는 장면에서 “숨으셨다”를 써요. 누가복음 4:30에는 둘 다 없고, 대신 여행 동사 두 개가 있어요.

그러니 기적이 아니었다고 못 박을 수는 없지만, 본문이 기적을 주장하지는 않아요. 주석가들도 갈려요. 기적으로 읽은 사람도, 침착함의 힘으로 읽은 사람도 있어서 어느 쪽이 합의라고 말하기 어려워요.

5세기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는 제삼의 길을 냈어요.

그분은 그들의 시도를 말하자면 아랑곳하지 않으신 채 그들 한가운데를 지나가셨다. 고난받기를 거부하셔서가 아니라—바로 그것 때문에 오셨으니—합당한 때를 기다리셨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 『누가복음 설교』 12

그래서 어디로 가셨을까요?

이 질문이 30절의 진짜 초점이에요.

우리는 “어떻게 빠져나가셨을까”를 궁금해하는데, 누가가 고른 동사는 어디로 가셨는지를 가리켜요. “가시니라”의 그 형태는 누가복음에서 예수님께 세 번 쓰여요.

어디무엇
4:30나사렛 벼랑에서 가시니라
7:6백부장의 집으로 가시더니
19:28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 가시더라

같은 동사가 이런 말씀에도 붙어요.

나사렛에서는 죽으실 수 없었어요. 도망이 아니라 장소와 때의 문제였다는 뜻이에요. 벼랑에서 걸어 나간 그 걸음이 결국 예루살렘으로 가요.

한 장 안에 짝이 하나 더 있어요.

붙잡으려는 손 두 가지
4:28–304:42–43
누가죽이려는 무리붙들어 두려는 무리
한 일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려 함“자기들에게서 떠나지 못하게 만류하려”
결과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보내심을 받았노라” 하며 떠나심

두 자리에 같은 동사가 놓여 있어요. 죽이려는 손도, 붙들어 두려는 손도 그분의 걸음을 정하지 못해요.

예고한 대로 갚아요

25–27절은 지나가는 예화가 아니라 예고예요. 누가는 뒤에서 그대로 치러요.

4장의 예고어디서 갚는가무엇이 겹치나
엘리야가 과부에게
4:25–26
나인성 과부
누가복음 7:11–17
7:15의 마지막 구절이 70인역 열왕기상 17:23과 헬라어로 똑같아요.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엘리사가 나병환자에게
4:27
돌아온 사마리아인
누가복음 17:11–19
“이 이방인 외에는”. 그 낱말 알로게네스(ἀλλογενής)신약 전체에 한 번뿐이에요

마지막 낱말에는 사연이 있어요. 예루살렘 성전 바깥뜰과 안뜰 사이에는 난간이 있었고, 거기 헬라어 경고문이 붙어 있었어요. 실물 두 점이 남아 있어요.

어떤 이방인도 성소를 두른 난간과 담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 잡히는 자는 죽음이 뒤따르는 데 대해 스스로 책임진다.

예루살렘 성전 경고 비문 · 기원전 23년~기원후 70년 · 1871년 발견

성전이 죽음으로 막아 세운 그 낱말을, 예수님은 감사하러 돌아온 유일한 사람에게 붙이셨어요.

정리하면

무엇이 확인되고 무엇이 남았나
항목근거판정
분노의 방아쇠는 25–27절이다28절이 “이것들을 듣고”로 앞을 가리킴. 22절은 호의확인
강조점은 이스라엘의 배제에 있다“그 중 아무도 — 오직” 구문, 동사는 수동태확인
상대는 이방인이 아니라 원수다왕상 16:31 이세벨, 왕하 5:1–2 침략군과 끌려온 아이확인
“보복의 날”을 읽지 않으셨다70인역 이사야 61:2와 직접 대조확인
그 절단이 분노의 직접 원인이다인용 직후가 호의(22절)배경일 뿐
4:30은 기적을 서술한다누가가 아는 “사라짐” 낱말이 하나도 없음본문이 말하지 않음
“유유히 지나가셨다”헬라어 7낱말에 부사 0개, 역본 11종에 태도 표현 없음본문에 없는 말
메시아 자칭에 분노했다21절 직후가 호의, 죄목 기록 없음순서와 맞지 않음
“삼 년 육 개월”과 왕상 18:1 “제삼 년”의 차이야고보서 5:17도 삼 년 육 개월미결
4:23의 “가버나움에서 들은 일”누가복음에서 아직 서술되지 않음(4:31부터)미결

어려운 말 풀이

70인역 七十人譯
구약을 헬라어로 옮긴 오래된 번역이에요. 기원전 3~2세기에 만들어졌고, 신약 저자들이 구약을 인용할 때 주로 참고한 본문이에요.
미완료
헬라어 시제 가운데 하나. “한 번 그랬다”가 아니라 “계속 그러고 있었다”를 그려요. 4:30의 “가시니라”가 이 시제예요.
덱토스 δεκτός
“받아들여지는, 환영받는”. 4:19의 “은혜의”와 4:24의 “환영을 받는”이 같은 낱말이에요.
아페시스 ἄφεσις
“놓아줌, 풀어 줌”. 이사야 61장과 58장이 이 낱말을 공유해서, 두 본문이 하나로 엮였어요.
알로게네스 ἀλλογενής
“다른 민족 사람, 이방인”. 신약에 한 번뿐인데, 성전 경고 비문에 새겨진 낱말이기도 해요.
강령적 본문 programmatic
책 앞머리에 놓여 그 책이 앞으로 할 일을 미리 선포하는 대목이에요. 취임사에 가까워요. 누가복음 4:16–30이 그렇게 읽혀요.
수동태
“누가 무엇을 했다”가 아니라 “무엇이 되어졌다”로 쓰는 방식. 행한 분을 드러내지 않고도 가리킬 수 있어요.
불가타 Vulgata
4세기 말에 히에로니무스가 다듬은 라틴어 성경. 서방 교회가 천 년 넘게 쓴 본문이에요.

근거 자료

본문 통계는 SBL 헬라어 신약(SBLGNT)의 형태소 자료를 직접 집계한 값입니다. 낱말 출현 횟수는 이 판본 기준이며, 다른 판본에서는 한두 번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사본 문제를 하나 밝혀 둡니다. 누가복음 4:30에는 이독(異讀)이 없습니다. 비평 본문과 비잔틴 다수 본문이 철자까지 일치합니다. 다만 후대 필사자들이 이 구절의 표현을 요한복음 8:59에 옮겨 붙였고, 그래서 흠정역(KJV) 계열 요한복음 8:59에는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가 덧붙어 있습니다. 비평 본문에는 없습니다. 고대 독자들도 이 구절을 “위기에서 빠져나가는 장면”으로 읽었다는 증거로는 값지지만, 기적이었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나사렛의 “낭떠러지” 위치는 확정하지 못했습니다. 전통이 가리키는 곳은 해발 395m의 봉우리로 나사렛 시가지에서 남서쪽 약 2km 지점인데, 본문은 “그 동네가 건설된 산”이라고 하므로 어법이 잘 맞지 않습니다. 미결로 둡니다.

후대 유대교가 나아만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도 참고할 만합니다. 바빌로니아 탈무드는 그를 “게르 토샤브”(노아 칠계명을 지키는 거류 이방인)로 분류합니다. 다만 이 문헌은 5~6세기 편집물이므로 1세기 나사렛 사람들의 생각을 보여 주는 자료로는 쓸 수 없습니다.

  • SBLGNT / MorphGNT 형태소 자료 — δεκτός · μαρτυρέω · πίμπλημι · διέρχομαι · πορεύομαι · ἄφαντος · ἀλλογενής 전수 집계
  • 비잔틴 다수 본문 RP2018 — 누가복음·요한복음 이문 대조
  • 70인역(Swete) — 이사야 61장·58장, 열왕기상 16·17·18장, 열왕기하 5장
  • 불가타 — 누가복음 4장
  • 요세푸스 『아피온 반박』 1권 13절 — 페니키아·두로 관련 서술
  •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 『누가복음 설교』 12 (Payne Smith 영역본)
  • 바빌로니아 탈무드 기틴 57b — 나아만 관련 대목
  • 예루살렘 성전 경고 비문 — 1871년 클레르몽가노 발견, 현재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 소장
  • Obiorah & Uroko, “The use of Isaiah 61:1–2 in Luke 4:18–19”, HTS Teologiese Studies 74/1 (2018) — 이사야 58:6 삽입의 낱말 갈고리 설명
  • 대한성서공회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 『새번역』,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성경』 (장절 표기와 짧은 인용)